본문 바로가기
무엇이든 리뷰해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by 후라야 2020. 10. 27.
728x90
인생책 추천합니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0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by 정은길)

우리가 꼭 귀를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2015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책으로 그 목소리를 전해드려요!

audioclip.naver.com

안녕하세요! 에디터 카이입니다. 1일 1포스팅을 꾸준히 지키고 싶었는데, 오늘은 본업을 처리하느라 도무지 시간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별 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책 추천을 한 권 해드릴까 합니다. 위의 링크는 제가 직접 오디오클립에서 제 인생책을 소개한 방송분이에요. 혹시 책 소개가 궁금하신 분들은 오디오클립을 들어보셔요. 제가 '오늘 이 순간' 하고 싶은 말들을, 이미 과거의 제가 다 해두었습니다. 하하. 디테일이 조금 변해 있을 테지만요. :-) 

 

제 인생책 앞표지입니다. (저는 인생책이 사실 몇 권 더 있습니다만...)

 

오늘은 늘 작업하던 거실과 방을 떠나 잘 쓰지 않는 골방에서 작업했어요. 그러다 책꽂이에서 제 인생책 책등을 보고 말았죠. 그래, '이 책 정말 각 티슈 옆에 두고 엉엉 울면서 봤지' 하는 생각이 스쳤고요. 아, 블로그에 책 소개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사실, 가급적 책 소개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시간이 부족하니까 늘 하던 걸 하자, 싶어 오늘은 특별히 책 추천, 책 리뷰가 되겠습니다.

 

뒤표지입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라는 인터뷰이의 말이 메인 카피로 보이지요.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저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고 신파적인 영웅담은 아니에요. 그저 그 순간을 치열하게 살았던 아픔의 기록이자, 병사이자 평범한 소녀들이었던 여성들의 삶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이 될 수도 있었을, 그 소녀들의 이야기 함께 볼까요.

 

괜히 제 옆에 와 있는 카라와 카야입니다. 사이도 안 좋으면서 함께 책상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요. 아이들 아래 첫 번째 책꽂이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보이시죠? 하하. 우연히 책등을 보고 정말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합니다.
카라는 카야에게 하악질을 하고, 카야는 그래도 떠날 생각이 없어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015년 10월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어요. 그리고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죠. 사실 자세한 정보 없이 제목만 봤을 때는 전쟁소설인가 했어요. 그리고 책을 읽을 때도 소설처럼 읽히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저자의 필력 탓에, 인터뷰는 르포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목소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참 어울리는 말이다 싶었어요. 

 

일하는 집사 근처에서 뒹굴대는 고양이 카후와 카야.

 

먼저 저자 소개부터 할게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예요. 수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모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입니다. (네, 이 책 말고도 다른 목소리소설들이 있어요.) 이 책은 그녀가 과거에 이미 집필을 끝낸 작품이에요. 무려 1983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책의 원고는 이미 탄생해 있었네요. 까마득한 옛날. 하지만 1985년에 세상에 발표됩니다. 세계적으로 무려 200만부나 판매되었지요. 어마어마하죠. 하지만 전쟁의 민낯을 대중에게 들려준 그녀의 책들은, 당시 시대상 탓에 재판을 받기도 했어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재판까지 받았을지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어느 순간엔 카후가 집사 근처에 있는가 싶은데요.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제가 밑줄 그어놓은 부분들을 몇 단락 소개해드릴게요. 혹시 유난히 공감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라면, 이 부분을 읽기 전에 티슈를 준비해주세요. 저는 정말 눈이 빨개지도록, 하지만 숨죽어 울면서 읽었는데, 또 어떤 분들은 별로 슬프지 않았다고 하기도 했어요. ;; (토론 모임에서요.) 

 

33쪽. 

'......우리의 기억은 결코 이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억은 제멋대로인데다 변덕스럽다. 게다가 기억은 줄에 묶인 개처럼 시간이라는 사슬에 매여 있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과거를 바라본다. 현재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애정을 느낀다. 이들에게 그 시절은 단지 전쟁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젊음이었고 첫사랑이었다.'

 

43쪽.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떠올랐다 가라앉고 떠올랐다 가라앉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 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폭발에 옷이 다 찢겨져나간 거라고. 사실 나도 거의 알몸이었거든...... 겨우 속옷만 걸치고 있었으니까.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했어. 바로 코앞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주위에서는 계속 '아, 아!' 신음 소리, 비명소리, 욕설 섞인 고함소리 들이 끊이지 않고 들렸지...... 그 병사를 데리고 간신히 강기슭에 도착했는데...... 아침 하늘에서 신호탄이 터지면서 순간 사방이 환해졌어. 그런데 보니까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석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45쪽.

우리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지. 아이가 배가 고파서...... 젖 달라고 보채는데...... 엄마도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었지. 아이가 울어댔어.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 수색견까지 데리고...... 만약 개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어. 서른 명이나 되는 우우리 목숨이 다...... 이해가 돼?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 누군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어......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 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64쪽.

전쟁, 이 또한 삶이라는 사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인간의 비밀들과도.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질문들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왜 악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가?' 정년 우리 안에 악을 향한 놀라움은 없단 말인가?'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267쪽.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317쪽.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들은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어. 스탈린이나 레닌을 믿은 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믿었지. 나중에 사람들들이 이름 붙인 것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를 믿은 거야. 모든 사람들을 위한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행복. 바로 그걸 믿었어.

 

 

또 어느 순간엔 이미 둘이 자리를 바꾸고 앉아 있어요. 신기한 고양이 녀석들.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한 구절 공유해드리면서 저는 물러갈게요. 

 

367쪽.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어.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햇살도......" 

 

이 책을 정말 좋아해요. 인생책이라는 표현은 쉽지 붙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이 책을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느냐, 그건 절대 아니에요. 이 책은 너무 아프거든요. 살갗을 불에 덴 것처럼 아파요. 그래서 자주 꺼내고, 정독할 순 없을 것 같은 책이죠. 지금까지 2번 정도 정독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사실 더 많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가장 큰 슬픔 하나만 공유할게요. 책 제목을 보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잖아요. 그 의미를 100퍼센트로 이해할 순 없겠지만,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남자의 얼굴을 했다는 말이겠죠. 이 책 속에서 인터뷰에 응한 소녀병사들은 이데올로기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삶의 터전,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뛰어들어요. 남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뛰어들었고,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싸웠고, 그리고 일부는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하고 일부는 살아 돌아오죠. 그리고 결국,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해요. 하지만, 살아돌아온 남자는 전쟁영웅이 되지만, 살아돌아온 여자는 마을에서, 심지어는 가족들에게서 배척당해요. 마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녀병사들을 바라보죠. 한 여성은 결국 살아남아 그립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녀의 엄마가 떠나라고 말해요. 괜히 그녀 때문에 동생들 앞길까지 망친다고. 이 한 가지 에피소드만 봐도,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여자들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요. 

어쩌면 전쟁에 참전했다가 살아남은 여성들은, 일상으로 돌아온 삶에서 그리 끔찍하지도 그리 아름답지도 않았던 전쟁이, 정말로 잔혹하고 끔찍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너무 아파요. 내가 만약 그녀들처럼 전쟁에 나가고, 운이 좋아 살아돌아왔다고 한들, 그게 정말 운이 좋은 것일지. 참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말죠. 지금 저는 내가 아까 왜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발견한 걸까 하는 후회도 스칩니다. 간단히 소개만 하려고 했는데 다시 읽다가 또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말거든요. 부디, 오늘밤은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사람들도, 진짜 전쟁을 겪어 일상이 고통인 사람들도, 모두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제 인생책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요.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이 책 꼭 읽어보세요. 모두가 함께 읽고, 고민하고, 생각해본다면, 과거보다 지금이, 지금보다 미래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인생책을 이렇게 허접하게 소개하다니, 조금 슬프지만! 오늘의 끝을 잡고 포스팅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