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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리뷰해요

리틀 포레스트 (feat. 고양이)

by 후라야 202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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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2권 (콩닥콩닥)

 

비오는 날, 비닐로 야무지게 감싸인 책 두 권을 빌려 왔어요. <리틀 포레스트> 1, 2권. 이 책을 빌려주신 분은, 딱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의 모습을 닮았지요. 이 작품은 일본영화로 보고 반해서 극장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보고 틈날 때면 늘 켜놓았던 영화였어요. 느린 시간의 단단한 힘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무엇을 하든 빨리빨리,가 아닌 그 하나의 행동, 그 하나의 음식에 오롯이 집중하는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했고요. 이 책을 빌려주신 현실 지인의 집에 놀러갔을 때도, 딱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지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의 결을 닮은 분이, 빌려주신 책이라 더 소중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어요. 그전에, 집에서 독서를 하려면 몇 단계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또르르.

 

"집사야, 이거 뭐야? 재밌는 거 혼자만 볼 거냥?" 막내 카야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요. 발로 찜콩. 하필 1권을 잡고 있어요.
"내가 문맹이라 내용은 모르겠지만, 표지만 봐도 평화롭다냥."
"집사야, 나도 맛있는 삼시 세끼에 간식도 먹고 싶다냥."

 

카야는 잠시 책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서 (드물게 비추는) 햇살을 만끽하네요. 비가 너무 쏟아지고,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집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이런 나날에, 작은 햇살이 더 반갑습니다. 저는 테이블에서 읽으려다가, 이런 만화책은 자고로 (에어컨 노노!) 선풍기 씨원-하게 틀어놓고 누워서 뒹굴거리며 봐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대나무 매트에 누워서 보려고 책을 챙겨서 쪼르르 달려갔어요. 철푸덕. (만화책 보면서 먹을 과자와 커피도 내렸지요! 원래 수박 같은 거 먹으면서 빌딩처럼 쌓아둔 만화책 읽으며 밤 새는 게 제 로망인데... 여기까지!)

 

"이게 뭐냐! 못 보던 물건이다냥." 카라가 관심을 보여요.
맙.소.사. 무려 1권을 방석으로 써버리는 센스.
1권을 슬쩍 하고 2권을 줬더니 베개로 사용합니다(잉?)

 

자자, 이제 오롯이 집중해서 <리틀 포레스트>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어요. *ㅁ* 시작부터 마음이 찡해지고 말았어요. 수유 열매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 이치코는 수유 열매와 얽힌 추억이 있는 연인과 헤어지고 코모리라는 작은 고향 마을로 돌아왔어요. 그러다 다시 수유의 계절이 온 거지요. '많은 열매가 떨어져서 썩어간다. 떨어진 건 모두 쓸모가 없을까?' 그런 건 외롭다며, 떨어진 수유 열매를 모아 바득바득 씻어내고, 잼을 만들기 시작해요. 그때 이치코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죠. "타는 게 무서워서 너무 많이 젓다보면 잼이 탁해진다." 탁하고 진한 핑크색으로 완성된 잼을 바라보며 이치코는 생각하죠. '이게 내 마음의 색깔일까.' 이 에피소드를 읽다가 저도 생각이 많아져요. 어쩌면 지금의 나도 떨어져서 썩어가는 게 아닐지? 잼으로라도 재활용될 수 있을지? 타는 게 무서워서 자꾸 젓다가 탁해진 잼을 마주하는 이치코처럼, 자꾸 무언가 무서워서 방어기제로 행동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색깔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다 졸아버린 잼처럼, 어쩌면 우리도 늘 망설이고 망설이다 순간을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요?

 

잔잔하고도 단단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요. 조용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은 어마어마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럼에도 읽다 보면 멈출 수밖에 없어져요. 이치코가 만드는 음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슴슴한 걸 만들어 먹고 싶어지거든요. 특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귀찮은 음식들 있잖아요. 최근 비가 쏴아- 쏴아- 참 많이도 내렸죠. 온 세상이 흘러내리는 물 속 세상 같은 요즘.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바삭하면서도 조금 기름진 전에, 막걸리 한 사발! 크- 하지만 요즘 자발적 술 줄이기 캠페인(?)으로 금주 중이에요. 전이나 하나 구워볼까요.

 

이것저것 토핑으로 넣거나, 작고 예쁘게 부친 전보다, 투박하지만 뭔가 진솔해 보이는(?) 커다란 감자전을 부쳤어요. 저는 초간장을 만들어 전을 찍어먹는 걸 좋아하는데, 캬 이 맛이죠.

 

엄마가 시골에서 직접 기른 감자 한 박스를 얼마전에 보내주었는데요. 둘째 언니 표현으론 '감자지옥'이에요. 감자에 싹이 나기 전에 열심히 먹어야 해서 매일매일 감자를 먹으니까요. 저도 잠시 그 많은 감자를 잊고 있다가, 감자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껍질을 벗기고, 큼직하게 자른 감자를 믹서에 넣고 돌려요(물도 조금 넣어서). 이때 감자가 너무 곱게 갈리지 않게 적당히만 갈아요. 큰 볼에 체를 받쳐서 물기를 빼주고요. 남은 물을 그대로 두었다가 전분이 아래로 가라앉으면 물만 버리고 전분은 갈아놓은 감자에 합쳐줘요. 그리고 튀김가루나 밀가루를 아주 소량(2스푼?) 넣고 잘 섞어 줍니다. 소금 간도 살짝 하고요. 기름을 두른 팬에 넓게 펴주고 치치- 익을 때까지 기다려요.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한번에 과감하게 휙- 뒤집어서 마저 구워줍니다. 자, 세상에서 가장 슴슴한 감자전 완성! (감자전계의 평양냉면일까요.ㅎ) 맛있게 먹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 책 보면서, 저만 이런 거 아니죠? 중간중간 자꾸 뭔갈 만들어 먹게 되는 마법의 책! 요리동기부여책(?)이라는 말도 어울려요.

 

이치코가 만든 음식을 고양이가 먹고 싶다고 우는 모습에, 이치코의 말. "너한테는 안 줘."

 

그 마음은 혼자 맛있는 거 다 먹겠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 사람이 먹는 자극적인 음식(사람한테는 슴슴해도!)이 고양이에게 얼마나 나쁜지 아는 사람은 절대 고양이에게 저런 음식을 줄 수 없죠. 저희 집 세 똘괭이 중에는, 특히, 카야가 사람 먹는 음식을 달라고 할 때가 참 많은데요. :ㅁ) 한번 현실 영상 보고 가실까요?

"집사야, 나도 밥 줘. 혼자 자꾸 맛있는 거 먹냐옹?"

 

봄양배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치코는 양배추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 중이에요.

 

양배추양배추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저는 몇 달 전에 만들어 먹은 양배추 요리가 생각났어요. 흐- 또 먹고 싶은 그 요리. 바로 제가 무지 싸-랑하는 오코노미야키! 일본 여행, 아니 특히 오키나와 여행을 가면, 아메리칸빌리지 내에 있는 오코노미야키 맛집이 있어요. 그 맛이 자꾸자꾸 생각나서 큰일이에요. 먹고 싶어서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오코노미야키집에서 배달시켜 먹은 적이 있는데, 차라리 그것보단... (심지어 가격도 피자와 비슷) 제가 직접 만든 오코노미야키가 훨씬 맛있었어요. 좋은 재료로 바로 만들어서 바로 먹으니까요. 참, 이 얘기가 왜 나왔느냐 하면요, 바로 이 장면 때문이죠.

 

양배추+밀가루+계란+생강으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던 이치코의 음식은, 바로 원래 있던 오코노미야키였던 거죠. 어쩐지 앞 페이지부터도 오코노미야키가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여러분은 양배추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세요? 음식의 힘은 참으로 대단해서, 온갖 추억과 살아갈 에너지를 품고 있기도 하잖아요. 저는 양배추 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오코노미야키가 떠오르고, 제가 좋아하는 오키오키 오키나와를 떠올려요. 오키나와엔 세 번밖에 가보지 못했어요. 한번은 친구들 여럿과, 또 한번은 남편과, 또 마지막은 저 혼자 다녀왔었죠. 그럼에도 늘 또 가고 싶은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키나와와 저의 인연은 특별(착각?)하거든요. 예전에 소개해 드렸던 저희 첫째 고양이 카후 이름도 오키나와 지역 방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건 일본 본토의 입장인 거고, 류큐왕국의 공식언어, 류큐어!)이니까요. 어때요? 이 정도면 특별한 인연 맞죠? 저는 매일 10년 동안 오키나와어를 써온 셈이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우기기 대마왕)

 

안 궁금하시겠지만, 제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오코노미야키! 진짜 맛있었어요. 흐- 비 오는 날 먹어도 꿀맛인데!

 

<리틀 포레스트>. 읽을수록 마치 <잃어버린 시절(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베어 문 마들렌처럼, 각자의 생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책 같아요. 이치코의 양배추는 그녀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의 것으로 추억을 열어젖히죠. 이 책을 읽다보면, 이치코의 요리목록처럼, 저의 음식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져요. (기록이 다 뭐예요, 직접 음식 하나하나 느린 과정을 거쳐 만들고 싶어지지요.) 하나의 음식에도 삶의 지혜와 추억이 깃들어 있고요. 또 힐링이라는 거추장스러운 표현이 아니어도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주는 것만은 분명한 음식들의 매력. 자급자족 생활기를 이렇게 꾸밈없이 담아낸 작품이 어디 또 있을까요?

 

젖은 셔츠처럼 착 달라붙은 대기. 습도 100%에 가까운 공기의 저항감은 "지느러미를 붙이면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다시 본문 이야기로! 요즘 같은 여름날 200%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정말 물 속에 있는 것 같은 습도인데, 지느러미가 있다면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는 표현이 착 와 닿아요. 이치코는 이 무더운 여름, 잼용 나무 스푼에 곰팡이가 생기는 걸 발견하고는 이것저것 챙겨서 스토브에 말리기까지 하죠. 겸사겸사 빵도 굽고, 뽀송뽀송한 집 안을 만들어요. 이치코가 여름을 대하는 자세 배우고 싶어집니다. 여름이라 힘들지만, 그럼에도 여름이라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는 이 에너지! 이치코는 외쳐요. "장마 같은 것엔 절대로 안 져!" 저도 마음속으로 외쳐 봤어요. '장마 같은 것엔 절대로, 절대로 안 져!' 우리, 지지 마요. 지지 맙시다. 으샤샤샤!

 

유우타가 왜 코모리로 돌아왔는지 설명하는 장면.
"천박한 인간의 멍청한 말을 듣는 게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졌어." 이 말, 이 말... 왜 이렇게 격하게 공감될까요. 또르르.

 

자자, 계속 얘기하다간 전체 내용 스포가 될 것 같아요. 저의 후기는 1권에서 마무리할게요. 이걸 읽다가 관심이 생긴 분들은 직접 보시면 좋겠어요. 그럼 결론! 무엇보다 제가 이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지점은 (사실 영화에서 좋았던 포인트와 맞닿아 있...) 누군가를 위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밥상도 정성껏 차리는 삶의 태도랄까요. 우리는 꽤 자주 혼자만의 밥상을 '대충' 때우잖아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을 땐 이것저것 많이도 차려 먹으면서요. 왜, 혼밥은 늘 간단한 거, 가벼운 거, 그냥 대충대충일까요. <리틀 포레스트>는 혼자의 식사도 똑같이 소중하고, 의미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위해, 스스로 직접 만들어 먹는 요리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니까요. 아, 갑자기 <나 혼자 산다>에서 매번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안84님의 혼밥신이 생각나요.

"우리, 혼자 먹을 때도, 자신을 위해 더 든든하게 맛있게 먹는 건 어떨까요."

 

짜잔! 저도 자급자족을 위해 직접 기르는 고추가 있어요. 언젠가 고추가 정말 열릴까요?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들어 먹는 요리는 더 의미있을 것 같아요. (쑥쑥 자라면 또 후기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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